
철학사를 관통한 패러독스와 딜레마지적 충격을 안겨주며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다“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이 유명한 문장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바로 플라톤의 저작들을 통해 더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그는 이른바 ‘산파술’이라는 문답법을 통해 상대방의 무지를 드러냄으로써 독단적이고 잘못된 지식을 제거하고 진리에 가까워지는 길을 제시했다. 하지만 철학사의 위대한 스승인 그조차 바로 자신이 한 유명한 발언 때문에 논리적인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즉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발화하는 순간 모순에 빠진다. 최소한 자신이 발화한 그 사실만은 ‘아는’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한 발언이 말 그대로 아무런 지식이 없는 ‘무지 그 자체’를 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 논리는 엄밀하게 사용되지 않을 때 언제든 치명적인 난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난관들은 철학사를 관통하며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패러독스 et 딜레마』는 이렇듯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구철학에서 논의된 철학적 난제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거기에는 철학사에서 비교적 유명세를 치른 고전적 역설에서부터, 일상에서 접하는 역설, 인간의 인지와 관련된 역설, 확률에서 발생하는 역설, 논쟁과 법정 변론에서 응용되는 역설, 종교와 윤리 문제에 등장하는 역설 등이 망라되어 있다. 캐나나 토론토대학의 수리심리학자 애너톨 래퍼포트는 패러독스가 사상가와 철학자들에게 지적 ‘충격’을 주지 않았다면 철학과 수학 분야에서 오늘날처럼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건전한 상식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모순된 진술들이 오히려 학문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학문적 영역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일상과 삶 속에서 인간 이성의 합리성과 논리성을 가늠해보고 이를 확장시키는 데 패러독스와 딜레마만큼 훌륭한 주제는 없기 때문이다. 고전적 역설에서부터 종교와 윤리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패러독스 et 딜레마』가 다루고 있는 난제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일철학사를 관통한 패러독스와 딜레마지적 충격을 안겨주며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다“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이 유명한 문장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바로 플라톤의 저작들을 통해 더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그는 이른바 ‘산파술’이라는 문답법을 통해 상대방의 무지를 드러냄으로써 독단적이고 잘못된 지식을 제거하고 진리에 가까워지는 길을 제시했다. 하지만 철학사의 위대한 스승인 그조차 바로 자신이 한 유명한 발언 때문에 논리적인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즉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발화하는 순간 모순에 빠진다. 최소한 자신이 발화한 그 사실만은 ‘아는’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한 발언이 말 그대로 아무런 지식이 없는 ‘무지 그 자체’를 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 논리는 엄밀하게 사용되지 않을 때 언제든 치명적인 난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난관들은 철학사를 관통하며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패러독스 et 딜레마』는 이렇듯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구철학에서 논의된 철학적 난제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거기에는 철학사에서 비교적 유명세를 치른 고전적 역설에서부터, 일상에서 접하는 역설, 인간의 인지와 관련된 역설, 확률에서 발생하는 역설, 논쟁과 법정 변론에서 응용되는 역설, 종교와 윤리 문제에 등장하는 역설 등이 망라되어 있다. 캐나나 토론토대학의 수리심리학자 애너톨 래퍼포트는 패러독스가 사상가와 철학자들에게 지적 ‘충격’을 주지 않았다면 철학과 수학 분야에서 오늘날처럼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건전한 상식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모순된 진술들이 오히려 학문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학문적 영역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일상과 삶 속에서 인간 이성의 합리성과 논리성을 가늠해보고 이를 확장시키는 데 패러독스와 딜레마만큼 훌륭한 주제는 없기 때문이다. 고전적 역설에서부터 종교와 윤리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패러독스 et 딜레마』가 다루고 있는 난제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적으로 ‘논리학’이라는 범주 내에서 다루고 있는 역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인지 패러독스’ 장에 등장하는 에셔의 착시 그림들은 언어뿐 아니라 인간의 감각기관이 얼마나 쉽게 함정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확률의 역설은 일상의 삶 속에서 ‘숫자’와 관련된 판단과 결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일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언뜻 역설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종교와 윤리’ 장에서는 신의 존재와 생명의 가치에 관한 물음을 둘러싼 난제를 다룬다. 물론 철학사에서 논의되어온 주요 난제들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난제를 현대적 감각의 이야기 형식으로 기술함으로써 철학적 개념에 대한 거리감을 좁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의 유명한 난제인 ‘아킬레우스와 거북’ 이야기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와 달팽이의 경주로 비유된다. 또한 프로타고라스와 그의 제자 에우아틀로스가 수강료를 둘러싸고 벌인 법정 비화는 빌헬름 부시의 그림동화 『막스와 모리츠』와 대를 이루며 ‘변호사의 딜레마’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저자가 이렇듯 조금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을 통해 철학적 난제들을 풀어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철학적 문제와 유머는 서로 모순을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즉 패러독스와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분명 당혹스러움에 빠지게 되겠지만 지나치게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식을 벗어난 듯한 혹은 상식을 파괴하는 듯한 논의들이 인간 이성의 합리성이라는 장막을 걷어내며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윌리엄 바스커빌의 말을 인용한다. “원숭이는 웃지 않아. 웃음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지. 웃음은 그가 가진 이성의 증표거든.”인간 이성의 합리성과 논리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인간의 건전한 상식이란 무엇일까? ‘확률의 역설’을 예로 들어보자. 한 학급에 32명의 학생이 있다. 이들 가운데 최소한 2명의 생일이 같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1년은 365일이나 되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확률이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일련의 확률 계산식을 거치면 2명의 생일이 같을 확률은 무려 75퍼센트에 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편지 한 통을 자신이 모르는, 그것도 먼 나라에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과제가 주어졌다고 하자. 단 편지의 수신인을 알 것으로 예상되는 다른 사람을 중간 단계 삼아 편지를 전달해야 한다. 과연 몇 명을 거쳐야 그 사람에게 편지가 전달될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에 따르면 이 실험에서 많은 사람들은 100명 정도를 거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2~10명 정도만 거치면 편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생각보다 ‘세상은 좁다’는 얘기다.우리가 믿고 있는 상식, 더 나아가 합리성이 결코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을 가능성이 있는 까닭은 인간 이성이 기대고 있는 논리와 개념을 확증하기가 때로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록색’ 에메랄드를 ‘초록색’이라고 확증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을까? ‘모든 까마귀는 검다’고 확증할 수 있을까? 만약 특정 시점에 파란색으로 변하는 에메랄드가 있다면 어떨까? 혹은 특정 상황 때문에 깃털이 빨간색으로 변하는 까마귀가 있다면 어떨까? 초록색과 검은색은 에메랄드와 까마귀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미국의 논리학자 넬슨 굿맨이 ‘초랑과 파록의 역설’에서 제기한 이 문제는 인간의 건전한 상식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사실 소크라테스가 문답법을 통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사람들의 믿음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물었던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에 대한 믿음이 깨진 사람들은 놀라움과 충격에 빠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이 바로 그런 놀라움과 함께 시작된다고 말한 바 있다. 저자 위르겐 베를리츠가 서문에서 말했듯, 이 책은 바로 그런 놀라움의 진수들을 만끽하도록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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