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청靑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김문수.가장 소외된 곳에서 치열하게, 역동적으로 살아온 족적과 만남들.처음 공개되는 그의 드라마틱한 삶과 인생 이야기!다소 딱딱한 인상에 잘 웃지 않는 사람, 그러나 정말 일은 열심히 하는 사람.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대략 이렇다. 성실하게 일만하는 사람이니 그의 삶도 그저 그러려니 생각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의 지난 삶은 그 누구보다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하다. 1951년 경북 영천에서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이라면 이골이 날 만큼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는 ‘문중의 별’로 떠오른다. 하지만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학생활이 그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의 가슴속에는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동아리 선배와 함께 판잣집 빈민촌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눈물겨운 삶의 애환과 맞딱뜨리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결심하게 된다. 지금까지 그가 변치 않고 자신의 안위는 뒤로 한 채 서민들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이후 김문수는 학생운동에 적극 가담하기 시작하는데, 서울대학생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위장취업을 하여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그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가족들의 기대를 뒤로 한 채, 김문수는 유신시대를 거쳐 5공 시절을 민주화와 노동운동에 투신하다 수배와 투옥생활을 반복하게 되고 혹독한 고문에 시달리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그의 2, 30대는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그런 암울한 시기에 노동현장에서 만난 운명의 상대 설란영과 결혼한다. 이후 민중당을 창당했고 문민정부 시절 입당 제의를 받고 민자당에 입당하게 된다. ‘혁명’을 통해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그가 ‘변절자’라는 비난을 감내하면서까지 제도권으로 들어간 까닭은 오로지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고 있는 약자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김문수가 재야의 옷을 벗고 3선 의원에서 재선 경기도지사가 되기까지... 그 과정엔 수많은 인간적인 갈등과 번민 그리고 눈물이 있었다. 96년 경기도 부천 소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지금까지 '일 잘하는 국회의원', '약속 잘푸르른 청靑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김문수.가장 소외된 곳에서 치열하게, 역동적으로 살아온 족적과 만남들.처음 공개되는 그의 드라마틱한 삶과 인생 이야기!다소 딱딱한 인상에 잘 웃지 않는 사람, 그러나 정말 일은 열심히 하는 사람.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대략 이렇다. 성실하게 일만하는 사람이니 그의 삶도 그저 그러려니 생각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의 지난 삶은 그 누구보다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하다. 1951년 경북 영천에서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이라면 이골이 날 만큼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는 ‘문중의 별’로 떠오른다. 하지만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학생활이 그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의 가슴속에는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동아리 선배와 함께 판잣집 빈민촌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눈물겨운 삶의 애환과 맞딱뜨리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결심하게 된다. 지금까지 그가 변치 않고 자신의 안위는 뒤로 한 채 서민들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이후 김문수는 학생운동에 적극 가담하기 시작하는데, 서울대학생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위장취업을 하여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그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가족들의 기대를 뒤로 한 채, 김문수는 유신시대를 거쳐 5공 시절을 민주화와 노동운동에 투신하다 수배와 투옥생활을 반복하게 되고 혹독한 고문에 시달리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그의 2, 30대는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그런 암울한 시기에 노동현장에서 만난 운명의 상대 설란영과 결혼한다. 이후 민중당을 창당했고 문민정부 시절 입당 제의를 받고 민자당에 입당하게 된다. ‘혁명’을 통해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그가 ‘변절자’라는 비난을 감내하면서까지 제도권으로 들어간 까닭은 오로지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고 있는 약자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김문수가 재야의 옷을 벗고 3선 의원에서 재선 경기도지사가 되기까지... 그 과정엔 수많은 인간적인 갈등과 번민 그리고 눈물이 있었다. 96년 경기도 부천 소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지금까지 '일 잘하는 국회의원', '약속 잘 지키는 정치인' 등의 화려한 수식어가 늘 그를 따라다닌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런 수식어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왜 일 잘하는 정치인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의 삶 속에서 인간미 물씬 풍기는, 푸른 청년의 마음을 간직한 김문수의 진면목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할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쉼 없이 일을 해온 건 그가 꿈꾸는 세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고, 아이들이 입시경쟁에서 놓여나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 가난해서 치료를 못 받거나 공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빛나는 과실을 딸 수 있는 그런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경제적인 성장만이 아닌 국민들이 진정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잘사는 나라고 선진화된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꿈꾼다. 우리나라가 그런 선진국가로 ‘동방의 등불’이 되어 환하게 빛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등불을 밝히는 ‘심지’ 역할을 하고 싶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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