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바로 드라마!숲 속에 있으면 숲의 모양을 볼 수가 없다. 그런 인간적 근시안 때문에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현실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 『비굴해도 괜찮아』는 그 어려움을 유머와 위트로 가볍게 뛰어넘은 진실한 코미디 소설이다. 암울한 사회를 바라보는 대학생 고찬 군의 유머 가득한 독설과 풍자!『비굴해도 괜찮아』는 평범한 우리 가족,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떠한 상징도 비유도 사용하지 않은 진짜 우리 사회의 단상을 정제되지 않은 현실적인 언어로 그린 신자연주의 소설이다. 주인공 고찬의 일기에는 우리들이 직접 겪고 살아온 최근 몇 개월의 복잡다단한 현실이 담겨있고 그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진정한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들 자신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있다. 비굴한 면이 있다고 스스로를 평하는 작가는 이 소설의 여러 사건이 모두 허구라고 우기고 있지만, 모든 것은 명백히 우리 시대에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일어난 실제적 배경을 고찬의 일기를 통해 충실히 묘사하고 있다. 가치관이 붕괴되는 리얼한 현실을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비판한다.때로는 비굴하고 때로는 초라한,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고 그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우리들이지만, 깊은 속마음 뜨거운 가슴 속에는 체 게바라처럼 멋쟁이가 들어앉아 언제든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매일 이어지는 초라한 시간 속에서도 나름 살아내야만 하는 뭔가 정당한 사유를 찾아내야한다고 그 웅크린 멋쟁이 체 게바라를 통해 마음속에서(만) 외쳐대고 있는 23세의 휴학생 고찬! 그는 단지 한 세대에 국한되지 않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 자본주의의 우두머리 미국의 물질만능주의를 가장 잘 답습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서민의 성장통을 대변하고 있다. 한심한 경제학자들의 어설픈 서구 논리와 정치적 코미디로 이리 저리 휩쓸리는 수많은 초식동물(대한민국의 서민)들은 이제 예전처럼 무지하지도, 무모하지도 않은 이성적 두뇌를 가졌으나,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인간이라면 지켜야 마땅한 가치관의 붕괴를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다. 고찬의 가장 서민적인 캐릭터이면서 한편으로 숨은 지성인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머리로는 많은 것을 아는 지성인이지만 행동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심지현실이 바로 드라마!숲 속에 있으면 숲의 모양을 볼 수가 없다. 그런 인간적 근시안 때문에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현실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 『비굴해도 괜찮아』는 그 어려움을 유머와 위트로 가볍게 뛰어넘은 진실한 코미디 소설이다. 암울한 사회를 바라보는 대학생 고찬 군의 유머 가득한 독설과 풍자!『비굴해도 괜찮아』는 평범한 우리 가족,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떠한 상징도 비유도 사용하지 않은 진짜 우리 사회의 단상을 정제되지 않은 현실적인 언어로 그린 신자연주의 소설이다. 주인공 고찬의 일기에는 우리들이 직접 겪고 살아온 최근 몇 개월의 복잡다단한 현실이 담겨있고 그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진정한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들 자신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있다. 비굴한 면이 있다고 스스로를 평하는 작가는 이 소설의 여러 사건이 모두 허구라고 우기고 있지만, 모든 것은 명백히 우리 시대에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일어난 실제적 배경을 고찬의 일기를 통해 충실히 묘사하고 있다. 가치관이 붕괴되는 리얼한 현실을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비판한다.때로는 비굴하고 때로는 초라한,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고 그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우리들이지만, 깊은 속마음 뜨거운 가슴 속에는 체 게바라처럼 멋쟁이가 들어앉아 언제든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매일 이어지는 초라한 시간 속에서도 나름 살아내야만 하는 뭔가 정당한 사유를 찾아내야한다고 그 웅크린 멋쟁이 체 게바라를 통해 마음속에서(만) 외쳐대고 있는 23세의 휴학생 고찬! 그는 단지 한 세대에 국한되지 않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 자본주의의 우두머리 미국의 물질만능주의를 가장 잘 답습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서민의 성장통을 대변하고 있다. 한심한 경제학자들의 어설픈 서구 논리와 정치적 코미디로 이리 저리 휩쓸리는 수많은 초식동물(대한민국의 서민)들은 이제 예전처럼 무지하지도, 무모하지도 않은 이성적 두뇌를 가졌으나,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인간이라면 지켜야 마땅한 가치관의 붕괴를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다. 고찬의 가장 서민적인 캐릭터이면서 한편으로 숨은 지성인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머리로는 많은 것을 아는 지성인이지만 행동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심지어 그와 친구 태일이는 태안반도까지 가서 고작 빵 몇 개 얻어먹고 온 것이 전부다! 이는 우리시대의 ‘죽은 지성’을 차가운 시선으로 비꼰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 정도라면 비굴해도 괜찮다고 자위한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우리 미래를 짊어진 젊은이들이 비록 죽은 지성일지라도 지성을 갖추기라도 한다면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필요하지 않으면 지성을 갖출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른바 무뇌아無腦兒들이다. 이들은 안정된 직장만을 원하며 고뇌할줄 모르고 심신의 안위만을 찾는, 약간 심하게 말해 인간로봇 같은 존재들이다. 만약 이런 젊은이들뿐이라면 우리의 희망은 밝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그럴 리가 없다고 굳게 믿는다. 행동하지 못할지라도, 고난을 자처하지는 못할지라도, 다분히 이기적일지라도, 약간 비굴할지라도, 우리는 개가 아니므로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를 판단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알며 선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내면을 아주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비록 ‘숨은’ 지성인일지라도 젊은이들의 지성에 모든 희망이 달려있다는 강한 암시와 함께 고찬의 일기를 끝마친다.일기는 6.10촛불집회가 열리기 바로 전날에 끝난다. 촛불시위자들이 대규모 체포되는 현장을 고찬은 아직 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희망을 갖고 내일을 기다려야만 할까? 답은 소설의 마지막에 있다. 정신없이 웃으며 읽다보면 뒤에 남는 씁쓸함과 함께 소설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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